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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알아가기

짬뽕은 어느 나라 음식일까요?

by 지맛생 2024. 9. 16.

안녕하세요!

지혜로운 맛집 생활

지맛생입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생각나는 음식은

따뜻한 국물요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중식 중에서! 국물이 있고 한국인의 매운맛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음식!

짬.뽕!

 

짬뽕? 중국집에서 자주 보던 메뉴라

중국음식인가? 하면서도 이자카야에서

판매하는 나가사키 짬뽕은 일본음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도 왠지 우리의 입맛에 맞는

짬뽕은 우리나라 음식인 것 같기도 한데요!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짬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요~

⭐ about : 짬뽕 ⭐ 

 

어느 나라 음식인지 정말 구별하기 어려운

짬뽕! 과연 짬뽕은 어떻게 탄생하였을까요?

짬뽕은 생각보다 출신이 복잡한 음식입니다.

복잡한 만큼 상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짬뽕"이라는 음식은 해방 이후부터 등장합니다.

특이한 점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짬뽕"이라는

단어 대신 초마면이라고 표시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럼 이 초마면은 뭘까요?

 

❶ 초마면

 

"짬뽕"을 대신하는 이 초마면은

초(抄) : 볶는다, 마(碼) : 재료 (고기,야채 등)

면(麵) : 면에 올려먹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초마면은 중국 푸젠성의 가정식이며,

간단한 서민음식이었습니다.

푸젠성은 대만과 마주 보는 바닷가 지역이어서

해산물이 풍부해서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해산물을 채소와 기름에 볶고 돼지나, 닭의 뼈를

우린 국물을 부은 자작한 면요리였습니다. 

초마면의 정확한 레시피가 없었기 때문에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운 내륙은 해산물을

대신하여 돼지고기, 양고기나, 소고기 등을

넣어서 먹기도 하였습니다.

초마면은 돼지나 닭의 뼈를 우렸기 때문에

지금의 짬뽕과 다른 뽀얀 하얀색이었다 합니다.

초마면과 비슷한 음식으로는 탕육사면

있었는데, 이 것도 푸젠성 지역의 면요리로

돼지고기 육수에 파와 버섯 등 야채를 넣어

요리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러한 초마면이 어떻게 짬뽕이 되었을까요?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❷ 일본으로 간 초마면

 

19세기 일본과 중국의 수호조약의 체결로 인해서

중국인들이 일본인의 항구도시인

요코하마, 나가사키, 고베 같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중국의 많은 면 요리가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나가사키 쪽으로는 대부분 중국 푸젠성

출신의 화교들이 대거 이동하였고

이때 전파된 요리 중 하나가 "초마면"입니다.

① 시나우동의 탄생

 

19세기말 나가사키에는 가난한 화교와

중국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푸젠성 출신의 화교 "천평순"은 1899년

규슈의 나가사키에 중국음식점

"시카이로"를 개업하였습니다.

가난한 화교와 중국 유학생들이 먹을

값싸고 푸짐한 음식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자신의 고향, 푸젠성의 음식인

"탕육사면"을 떠올리고 이 "탕육사면"에다가

나가사키 산 해산물과 다른 재료들을

넣어서 값이 싸고 양이 많은 음식을 개발

하였는데 이 음식의 명칭

"시나 : 차이나" + 우동, 즉 중국식 우동,

"시나우동"이라 불립니다.

"주카(중화)우동으로도 불렸습니다"

천평순의 "시나우동"은 영양가도 있으면서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아서 가난한 화교와

유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② "잔폰"으로 명칭이 바뀐 "시나우동"

그리고 "짬뽕"

 

"시나우동"이 유명해져 일본 사람들도

찾게 되면서 명칭이 "잔폰"으로 바뀝니다.

왜 그런 걸까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설을 알아보겠습니다.

 

1) 중국어로 "츠판(吃饭)"은

"밥을 먹다"라는 뜻입니다. 이 "츠판"을

푸젠성 사람들의 사투리로 발음으로 한다면

"샤뽕"이 된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에,

푸젠성 화교들이 인사말로 "너 밥 먹었어? 라며

"샤뽕, 샤뽕"하다 보니 일본사람이 듣고

"잔폰"으로 발음을 했다는 설

 

2) 일본말의 "잔폰( ちゃんぽん )

"뒤섞다"라는 의미를 가진 나가사키 사투리입니다.

기름에 야채를 뒤섞어서 볶는 걸 보고

일본인들이 "잔폰"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짬뽕"이 되었습니다. 신기한 건 우리나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2000년대까지

짬뽕을 "초마면"으로 순화해서

부르라 했다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러한 표기가 없습니다.

 

 

❸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마면과 잔뽄

 

"초마면"과 "잔폰"은 모두 19세기 후반에

한반도로 들어오게 됩니다.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청일전쟁 때,

전쟁과 난을 통하여 청나라군대와 일본군대는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청나라 군대와 청나라 민간인은

우리나라의 인천제물포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화교 역사가 시작됩니다.

 

힘든 일을 하는 일용직노동자(쿠리), 농사꾼,

무역상, 장사꾼 등 많은 직군의 민간인들이

들어옵니다. 중국 남부 지방의 사람들은

초마면을 일상적으로 먹었다고 하며,

이들을 위한 청나라 음식점이 인천차이나타운에

많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이 당시에는 인천제물포와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화교들이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들어진

잔뽕이 우리나라로 전해지기도 하였으며,

인천에 온 일본인들에게서도 잔뽕이 전해집니다.

 

❹ 우리나라 "짬뽕"

 

우리나라 짬뽕은 몇 변의 변신을 거칩니다.

 

처음에는 중국의 초마면과 일본의 잔뽕처럼

하얀색 국물의 짬뽕, 즉 백짬뽕과 비슷한 음식

이었다고 하며, 이 백짬뽕에 가느다란 실고추를

올린 형태로 현대의 빨간 짬뽕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초마면이라는 명칭으로 판매하였습니다.

1960년대까지 이러한 형태로 판매를 하다가

1970년대 들어 매운 음식이 인기가 좋아지고,

백짬뽕에 고춧가루와 고추기름까지 넣어

현대의 짬뽕과 비슷한 색상의 붉은 짬뽕을

판매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어

원래 중국집에서 잘 나갔던 중화우동=시나우동의

인기를 점점 밀어내게 됩니다. 

이때에는 그냥 짬뽕과 매운 짬뽕 두 가지로

판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0~90년대 들어와서 지금의

한국식 짬뽕이 대중화되었습니다.

 

출처 - 우리역사넷

❺  혼분식장려정책

 

한국 전쟁이 끝난 뒤, 우리나라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습니다.

1956년, 미국으로부터 잉여 농산물을 원조받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 밀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쌀 중심의 식문화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밀은 창고에 쌓여만 갔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60~70년대,

약 10년간 혼분식장려운동정책

하게 되는데, 모든 식당에 잡곡이나 국수를

혼합하여 팔게 하였고, 일주일 중 이틀은

분식의 날로 정해 이날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쌀을 먹지 못하니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밀을 찾게 되었고, 간편하고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짬뽕과 짜장면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합니다.

 

❻  짬뽕의 종류

 

"짬뽕"에 어떠한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짬뽕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

 

 

 

오늘은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역사와

문화가 섞인 음식인 "짬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비 오는 날 짬뽕 한 그릇 어떠실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