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혜로운 맛집 생활
지맛생입니다!
오늘은 서민의 대표 중화요리 음식!
"짜장면"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중국에 짜장면은 없던데
짜장면은 중국음식이 아닌가요?
짜장면은 뭐고 유니짜장은 뭐죠?
등등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이 많으시죠!
오늘 제가 짜장면의 역사와
짜장면의 종류 등 짜장면에 대해서
많이 많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about : 짜장면 ⭐
짜장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하루에 약 150만 그릇이 판매된다고도 하죠.
정말 어마어마 하네요~
이렇게 인기 많은 음식인 짜장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짜장면이 어느 나라 음식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짜장면! 이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부터
알아보며 차근차근 시작하겠습니다.
❶ 짜장면의 어원은 어떻게 될까요?
짜장면~짜장면을 발음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발음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셨던 분 계시나요!
맞습니다. 사실 짜장면의 본원은 중국입니다.
짜장면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어보면
"작장면(炸醬麺)"입니다.
"짜"라는 음은 우리 한자음에 없습니다.
"작장면"을 풀이하면
"장(醬)을 볶아 면과 함께 먹는다"가 됩니다.
작장면의 중국 발음은
"자장몐, 자지앙미엔(Zhajiangmian)"이
되는데요.
이 중국 발음이 된소리가 되어서 지금의
"짜장면"이 된 것입니다.
❷ "작장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작장면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중에 중국에서 전해지는 유명한 썰은,
기원전 210년경 중국 대륙의 최대의 밀 생산지이자
면 요리가 유명했던 산동 지역에 간 진시황이
산동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국수 요리사를
불러다가 요리를 시켰는데, 요리사는 삶은 면 위에
중국식 된장을 그냥 얹어서 음식을 낼 생각이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된장을 기름에 볶았습니다.
(사실 이 된장을 기름에 볶는 과정은
필요 없던 것이었습니다. 🙄)
진시황이 이를 알면 큰일 날까봐 신메뉴라고
소개하였고, 진시황이 이 "볶은 장을 얹은 면"을 먹고
맛있다고 칭찬하였는데 이 음식이
작장면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때에 사용한 중국신 된장은 산동지역이 원산지로
콩과 밀가루를 원료로 메주를 띄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된장은 산동지역 사람들이
이 된장에 대파를 찍어 먹으며,
"총(蔥) : 파 총"자를 사용하여 "총장"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춘장으로 변했다고 하는 썰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이 음식을 산동 반도에서는
"볶은 텐멘장을 얹은 국수" 차오장멘(炒醬麵)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작장면의 시초라 합니다.
❸ 작장면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요?
중국인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때입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파견된 청나라 군대와
청나라 군대의 보급을 위해 들어온 청나라 군사들과
몇몇 상인들이 들어왔고, 그 이후 1884년 인천에
청국조계(외국인의 거주 및 무역을 위해 일정의 경계
내 설치된 공간)가 설정되면서, 청의 거류지 공사관
등이 설치되고 청나라의 무역상,인력거꾼,노동자 등
많은 중국인들이 인천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화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짐꾼과 인력거꾼,
비숙련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중국 산동 지방 출신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정착한 화교들이 산동지방의 가정식이었던 작장면을
만들어 먹기도하고, 인청항과 부두에서 일하던
이들에게 노점상에서 볶은 춘장에 면을 비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작장면"을 팔았던 것이
짜장면의 시초였습니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시초는 북경식 작장면에서
유래된 것이라기보단 산동 지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때의 "작장면"은 지금의 "간짜장"처럼
면과 볶음춘장을 따로 주어 볶음춘장을
면에 넣어 비벼먹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 청조계지(현,인천)을 중심으로
작장면을 파는 중식 음식점이 많이 생겼는데,
1905년 최초의 청나라 요리집 "공화춘"이
작장면을 처음으로 팔기 시작하였으며,
1984년 문을 닫습니다.
2006년엔 "공화춘"건물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❹ 작장면은 어떻게 지금의 짜장면이
되었나요?
① 작장면의 위기 - 화교 인구의 정체
일제강점기에 작장면은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고,
오히려 대중적인 중국 음식은 호떡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음식으로는 설렁탕이 대중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인기를 얻지 못한 작장면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며, 한국과 중국의
국교 단절로 우리나라를 떠나는 화교는 늘어났고,
한국 전쟁과 그 이후 화교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두어 큰 규모의 사업을 하지 못하자
우리나라를 떠나는 화교는 더 늘어갔습니다.
② 정부의 규제와 현대 짜장면의 탄생
하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던 화교들이
정부가 화교에 대한 재산권 행사로 인해서
큰 사업을 하지 못해 소규모 음식점을 하게되는데,
이때 이들은 고급 중식 요리를 만들 능력이 없어
요리가 아닌 끼니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요리 중 조리법이 쉬운
작장면, 우동, 짬뽕, 만두 등을 파는
소규모 중국 음식점을 차리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있던 화교들이 생계를 위해서
요식업을 전업으로 하며, 중식점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때, 정부가 화교의 재산권을 계속 단속하자
화교 요리사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춘장을 볶을 때 넣는 고기 양을 줄이는 대신
양파와 애호박, 양배추 등의 야채를 늘리는 방법과
뼈를 고아 만든 고기 육수를 춘장에 넣거나
혹은 돼지고기 지방 기름과 춘장을 함께 볶고,
녹말가루 등을 풀어 양을 늘렸는데,
이러 방법들이 점차 중국의 작장면과는
다른 형태와 다른 맛을 만들어 주었으며,
이는 곧 원가측면으로서는 절감하고
맛의 측면으로서는 작장면보다 더 풍미가 있는
우리나라만의 짜장면이 만들어지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③ 사자표 춘장의 탄생
1940년대 화교 1세대인 왕손산씨가
짠맛이 강한 중국산 춘장 대신에,
춘장의 기원이라고 하는 텐멘장(밀가루에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단맛 나는 장)에
캐러멜을 첨가한 춘장을 개발하였는데
이 춘장은 중화음식점 10곳 중 7,8곳이
사용할 정도로 유명하였고, 수년간 한국 자장면의
핵심 맛이라고 불렸던 "사자표 춘장"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짜장면은 중국의 작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었습니다.
또한 캐러멜이 혼합된 "사자표 춘장"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원가절감이
되어 춘장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였고
춘장을 볶는 과정이 간소화 되어
중국음식점이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④ 양파의 대량 지배
짜장면을 요리할 때 정말 필요한 재료 중 하나인
양파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06년입니다.
1960년대 들어 양파의 대량 재배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여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화교들에게는 원가절감이 되었고,
양파때문에 짜장면의 맛이 더 좋아져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줍니다.
⑤ 70년대 화교의 이주
10만 명에 가깝던 화교의 숫자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70년 대까지 화교의
경제 진출을 막기 위한 각종 제한을 걸어
대만,홍콩,미국 등으로 이주해 한때 2만명까지
줄었습니다. 이때, 화교 중국 음식점 경영자들이
한국인으로 빠르게 교체가 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우리나라 만의 짜장면을 요리하였고
그로써 더욱더 대중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❺ 짜장면의 대중화
60년대 초 중국의 "작장면"의 맛은
우리나라 짜장면의 맛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짜장면은 시대적 배경의 힘입어
더욱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기매김합니다.
① 60,70년대의 혼분식장려운동정책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1956년, 미국으로부터 잉여 농산물을 원조 받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 밀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쌀 중심의 식문화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밀은 창고에 쌓여만 갔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60년~70년대,
약 10년간 혼분식장려운동정책을
하게 되는데, 모든 식당에 잡곡이나 국수를
혼합하여 팔게 하였고, 일주일 중 이틀은
분식의 날로 정해 이날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쌀을 먹지 못하니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밀을 찾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도 있고 배도 부른 짜장면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합니다.
② 8282 문화
짜장면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배달의 민족입니다.
배달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짜장면을
먼저 연상시킬 수 있을 겁니다.
고도성장을 하였던 70~90년대까지,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진 배달 시스템은 짜장면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❻ 작장면? 중국에서는 보기 어렵던데요..?
작장면의 변형인 짜장면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작장면은
베이징,산동성, 허베이성 등 북방 지역 등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며, 우리나라 부산의 밀면과
비슷한 특정 지역의 서민적인 향토음식입니다.
쌀국수를 주로 먹는 남방 지역에서는
흔히 먹는 음식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아예 작장면에 대해서 모르는
중국인들도 많습니다.
❼ 중국의 작장면 vs 한국의 짜장면
중국의 작장면과 한국의 짜장면은
형태가 매우 다릅니다.
한국식 짜장면은 달달하고 구수한 춘장의
맛이 있는 반면에 중국식 작장면은
된장과 같은 짠맛이 납니다.
한국식 짜장면은 뜨겁게 먹지만
중국식 작장면은 삶은 면과 생야채,
볶음 면장에 비벼 여름에 먹는 차가운
비빔국수의 형태입니다.
❽ 우리나라 짜장면의 종류
오늘은 짜장면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결론은! 짜장면의 근원은 중국이지만!
우리나라만의 맛이 있는 짜장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점심, 저녁! 메뉴 고르기 힘드실 때
짜장면 한 그릇 어떠실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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